특별한 나의 이너님, 안녕하세요? 김수민입니다. 인사를 어떻게 건네야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대표, 디자이너 이런 수식어를 모두 털어낸 그저 인간 김수민으로서, 조금은 순수하고도 부끄러운 안부를 여쭙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멈추어있던 이 공간에 다시금 발을 들이기까지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네요. 사실 이렇게까지 오래 비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돌이켜보니 무엇을 그리 망설이고 놓치고 있었는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됩니다. 참, 글 목록 형태를 블로그 식으로 변경했는데 어떠세요? 기존의 게시판 스타일보다 보기가 좀 더 편하실 것 같아 변경해보았어요. 이 글들은 우리 이너님들만 읽어보시고 답변도 달 수 있는 만큼, 쓰리피쉬에서 하지 못한 좀 더 솔직하고 보다 날 것의 이야기들로 채워나갈 예정입니다. 두문분출 올라오는 게시글인만큼 서로 살아있는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길 바라요. 오늘 에세이의 제목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 446, 안희연님의 시집 제목이에요. 선물하고 싶은 분이 있어 오랜만에 들린 서점에서 홀린듯 구매한 시집이기도 하답니다. 약간의 사담을 섞자면 실은 문정희 시인의 [응]이라는 시집을 구매하러 간 길이었는데, 품절이기에 다른 시집들에 눈길을 돌리다 첫 페이지의 첫 시를 읽고 바로 구매를 결정한 책이에요. 그는 날이 제법 차다는 생각을 했다그리고 조금 외롭다고도 오늘은 불을 피워야지그는 마른 장작을 모아다 불을 피웠다 불아 피어나라 불아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구도 해치치 않는 불을꿈꾸었다 삼키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태우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이런 곳에도 집이 있었군요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호주머니 속 언 손을 꺼내면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손금이 뒤섞이는 줄도 모르고 해와 달이 애틋하게 서로를 배웅하고울타리 너머 잡풀이 자라고떠돌이 개가 제 영혼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내 안에서 죽은 나를 도닥이다 잠드는 불은 꺼진 지 오래이건만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불은 조금도 꺼지지 않고 불이 있었다_안희연 이너님들은 어떠신가요? 저는 이 시를 읽자마자 굉장한 슬픔이 밀려오는 동시에 눈물날만큼 다정한 위안을 받았답니다. 구절 하나하나 마음에 와닿지만 [이런 곳에도 집이 있었군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내 안에서 죽은 나를 도닥이다 잠드는] 이 두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요. 음... 약간의 스포일러를 하자면, 20FW의 주제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에요. 슬픔, 슬픔, 슬픔. 제게 있어 슬픔은 늘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들러붙어있어 미처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언제 가장 슬펐던가?" 로 시작된 물음에서 둑이 터지듯 쏟아져내린 감정은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벅찰만큼 영롱하더군요. 매 시즌 눈물을 글썽이지만 이번 시즌은 정말 펑펑 울며 들여다 본 순간들의 파편들이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고통은 극복하는게 아니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제가 삼키고 마주본 슬픔의 형태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고 있답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극복이나 희망, 계몽등이 아니에요.그저 현상을 인지하고, 마주보는 것. 나의 근원을 들여다보는 일. 안희연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 내 안에서 죽은 나를 도닥이다 잠드는 것.'밤이 밤이듯이' 같은 문장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이치. 하여, 이번 시즌에서는 이너님들과 각자의 슬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합니다.이너님께선 언제 가장 슬펐나요? 외부적인 요인(누군가 다치거나 아프거나 등등)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으로부터 기인된 슬픔은 언제였고, 무엇이었는지. 오늘은 비가 참 많이 내리네요. 쏟아지는 영롱한 보석들.